이건 팀이 알아서 넘어갔는데, 이건 일곱 번째 그대로입니다 🚦

돈독(제가 만드는 자산관리 앱, https://don-doc.com )을 점검하는 AI 에이전트 넷이 있습니다. 기획·개발·디자인·마케팅을 하나씩 맡아서 코드와 화면을 매일 훑고 리포트를 남깁니다. 저는 아침에 그 리포트 네 개를 훑어보는 게 루틴입니다.
이번 주 그 루틴에서 재미있는 대비를 봤습니다. 같은 팀 안에서, 어떤 요청은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 그냥 넘어갔고, 어떤 요청은 일곱 번을 다시 올려도 여전히 그대로였습니다.
일곱 번 물어도 대답이 없는 요청
마케팅 담당 에이전트가 8월 24일부터 매 라운드 똑같은 걸 올립니다. “sproutdad.com(이 블로그)에 빌드로그 원고 하나 발행해도 되냐”는 승인 요청입니다. 8/24 → 8/25 → 8/26 → 8/27 → 8/28 → 8/29 → 8/30. 일곱 번째인데 저는 아직 대답을 안 했습니다.
원고 내용 자체는 꽤 괜찮습니다. 8월 9일에 동명 계좌 잔액이 잘못 반영되는 사고가 있었는데, 8월 13일에 “바꾸기 전에 먼저 미리보기로 보여주고, 확인해야 반영”되는 안전장치를 설계했고, 8월 18일엔 실제로 되돌리기 버튼이 배포됐습니다. 사고부터 버튼까지 열흘이 채 안 걸렸다는, build-in-public다운 소재입니다. 그런데도 저는 일곱 라운드째 승인 버튼을 안 눌렀습니다.
반면 이건 아무도 안 물어봤습니다
같은 기간 다른 항목 하나는 정반대로 흘러갔습니다. 대시보드 화면 코드 한 덩어리(계좌 요약·마스킹 처리 로직)를 함수 두 개로 분리하자는 제안이 8월 26일부터 매 라운드 똑같이 올라왔습니다. 기획 담당이 제안하고, 개발 담당이 “설계 리스크 없다”고 확인하는 게 8월 26일부터 29일까지 나흘 반복됐습니다.
8월 29일, 개발 담당이 리포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. “반대 없으면 다음 코드 가능 라운드에서 착수.” 8월 30일, 기획 담당이 이 문장을 근거로 선언했습니다. “팀 결정 성립. 더 이상 사용자 확인 필요에 올리지 않는다.” 아무도 저한테 승인을 구하지 않았습니다. 같은 날 디자인 담당도 별개로 남아 있던 오탈자 수정 건(“Don-Doc” → “don Doc”)을 “승인 불요, 다음 코드 세션에 같이 처리”로 스스로 정리했습니다.

가르는 기준은 딱 둘입니다
처음엔 “왜 이건 되고 저건 안 되지” 싶었는데,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니 기준이 보였습니다.
되돌릴 수 있는가. 코드 리팩터링이나 오탈자 수정은 잘못되면 git으로 되돌리면 그만입니다. 반면 블로그 글은 한 번 나가면 이미 읽은 사람의 머릿속에서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.
바깥으로 나가는가. 대시보드 코드는 앱 안에서만 도는 내부 구조입니다. 블로그 발행은 제 이름과 회사 소속이 걸린 채로 인터넷에 공개되는 일입니다.
코드는 되돌리면 그만이지만, 한 번 나간 글은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.
내부 + 되돌릴 수 있는 일은, 반복 합의가 몇 라운드 쌓이면 팀 스스로 “이제 안 물어봐도 된다”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. 외부로 나가거나 되돌릴 수 없는 일은, 몇 번을 반복해서 올려도 그 성격이 안 바뀝니다. 계속 사람 몫으로 남습니다.
따라 하기
여러 AI 에이전트에게 “이거 해도 되냐”고 계속 묻게 만들고 있다면, 매번 새로 판단하지 말고 아래 두 질문을 에이전트 정의에 체크리스트로 박아두는 걸 권합니다.
어떤 작업을 "반복 합의 후 자동 승인"으로 넘길지 판단할 때,
아래 두 질문에 모두 "예"인 경우에만 넘긴다.
① 되돌릴 수 있는가?
- git revert, 재배포, 파일 롤백 등으로 "없던 일"로 만들 수 있는가.
② 우리 시스템 안에서 끝나는가?
- 실행 결과를 실제 사람(고객·독자·거래 상대방)이 직접 보거나 받는 일이 없는가.
하나라도 "아니오"면, 몇 라운드를 반복해서 제안해도
"사용자 확인 필요" 목록에서 절대 빼지 않는다.
왜 필요한가 — 이 기준이 없으면 “반복해서 제안했는데 반대가 없었다”는 사실 자체가 승인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. 실제로 이번에 대시보드 코드 건은 그렇게 넘어갔고, 그건 맞는 판단이었습니다. 되돌릴 수 있고 안에서 끝나니까요. 하지만 같은 논리를 블로그 발행에 적용하면 안 됩니다. 일곱 번 반복 제안됐다는 것과, 발행해도 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.
마무리
이 기준을 알고 나서도, 저는 아직 그 발행 승인 버튼을 안 눌렀습니다. 다만 이제는 제가 왜 망설이는지는 압니다. 되돌릴 수 없고, 제 이름을 걸고 밖으로 나가는 일이라서입니다. 그 결정은 미룬 게 아니라, 원래 매번 사람이 내려야 하는 종류의 결정이었던 겁니다.

오늘도 차분히 한 걸음. 🐴
이 글은 산업 구조와 만드는 과정을 정리한 개인 기록입니다.
특정 종목의 매수·매도 추천이 아니며, 투자 판단과 그 결과는 독자 본인에게 있습니다.